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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화 <미련한 자는 죽느니라> 미련한 처녀는 왜 천국에 가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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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사역과 진입 4>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는 이는 거의 하나도 없다. 사람은 자질이 형편없기 짝이 없고, 영 안이 몹시 둔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야만성이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늘 마음을 놓지 못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크나큰 시험을 무릅쓰고 땅에 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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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 있는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주님은 언제쯤 나타나실까요? 어디에서 나타나실까요? 어떻게 해야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을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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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소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영광의 보좌에 앉으셨다>

하하하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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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탄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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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jpg

 

사람의 상상 속에는,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하나님은 식은 죽 먹기로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람이 달성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0.1%’만을 요구했다. 이 사실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고 또한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더더욱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깨우침과 은총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일 바로 그날, 모든 사람은 또 우왕좌왕하며 머리만 긁적였다. 백성에게 떠다니는 구름이 아니라 새하얀 눈이 되라고 했는데, 그럼 ‘새하얀 눈’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일까? ‘떠다니는 구름’은 또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일까? 거기에서 하나님은 일부러 그 내포된 의미를 말씀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모두 짙은 안개 속으로 빠지게 하여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찾게 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백성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 모든 사람은 측량하기 어려운 이 어휘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생각’들이 마음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게다가 눈앞에는 흩날리는 눈송이가 아른거리고, 머릿속에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연상되었다. 그럼 하나님은 왜 백성에게 떠다니는 구름이 되지 말고 새하얀 눈이 되라고 했을까? 그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새하얀 눈’은 대자연을 아름답게 물들일 뿐만 아니라 살균 소독 효과가 있어 농경지에도 유익한 가치 있는 존재이다. 큰 눈이 내리고 나면 모든 병균이 새하얀 눈에 뒤덮이게 되고, 또한 공간 전체가 삽시간에 생기로 넘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백성이 된 자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사실로부터 자기 자신을 이기고 정상 인성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큰 눈이 대자연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일면이다. 나중에는 백성들이 성숙해짐으로 큰 붉은 용을 끝장내고 하나님의 땅의 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널리 전파할 것이다. 그리하여 땅에 있는 모든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만하고, 땅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빛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할 것이다. 이로써 곳곳에는 편히 지내며 즐겁게 일하고, 행복 가득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항상 새롭게 펼쳐지는 국면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 현 단계에 존재하는 각종 전염병인 사탄이 패괴시킨 성품을 ― 불의, 교활함과 간사함, 사욕과 악한 정욕 등의 이런 병균을 ― 모두 소멸시키고, 따라서 하늘도, 땅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큰 눈이 내린 뒤’의 진정한 의미이다. 떠다니는 구름이 된다면 하나님이 말씀한 ‘부화뇌동’하는 부류처럼, 사탄이 시험하거나 하나님이 시련을 주면 즉시 날려 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본질조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일찌감치 사라질 존재인 것이다. 떠다니는 구름이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되게 할 것이다. 이 부류는 언제 어디서나 노략당할 위험이 존재하며, 사탄이 삼켜 버릴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탄에게 노략당할 때면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에게 봉사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현저하게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자이자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정상인의 본질도 없고, 실질적인 사용 가치도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백성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 사람들은 그 말씀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되었지만 그 뒤로는 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했다. 하나님이 화제를 또 자신에게로 돌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로 인해 난감해졌다. “나는 본래 거룩한 곳에서 왔으므로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는 연꽃과는 전혀 다르다. 연꽃은 본래 진흙에서 온 것이지, 거룩한 곳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백성에게 요구한 뒤에 하나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얘기했을까? 혹시 그 속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확실히 그 양자 사이에는 내재적인 연관성이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들바람을 타고 푸른 잎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연꽃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며, 너무나 사랑스럽다. 정말 당장이라도 헤엄쳐 가 한 송이를 꺾어 자세히 보고 싶을 정도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진흙에서 왔고, 이름만 있을 뿐 본질은 없다고 말씀했다. 보아하니, 하나님은 연꽃을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그의 말씀에 혐오감도 어느 정도 담고 있음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어도 더럽지 않다’는 말로 인해 연꽃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지 모르며, 심지어 너무도 좋아서 거의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는 듯 묘사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기에 연꽃은 아무 가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이로부터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는 하늘 꼭대기에서 땅바닥까지의 거리만큼 크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므로 필요한 영양분도 진흙에서 나온다. 다만 연꽃은 변장으로 자신을 꾸밀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 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꽃의 아름다운 겉모습만 보았을 뿐, 연꽃 안의 생명이 불결한 데다가 더럽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연꽃에는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다고 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조금의 거짓도 없는 완전한 사실이다. 오늘날의 백성도 이와 같지 않으냐? 그저 겉으로만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흡족해할까 하여 하나님 앞에서 환심을 사고 자신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탄의 패괴 성품이 자리하고, 뱃속은 불순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 불순물이 섞이지는 않았는지, 일편단심으로 순수한지를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사자 시절에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미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욕하고, 입으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입으로 소극적인 말을 하며 마음으로 몰래 하나님을 대적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행동까지 서로 보조가 맞았다. 입으로 음탕한 말을 뱉고, 손짓을 해 대며, 극히 방탕하여 큰 붉은 용의 본색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냈는데, 정말로 큰 붉은 용의 자손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랬음에도 오늘날에는 ‘충성스러운 봉사자’의 자리에 서서 ‘충성스러운’ 백성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 정말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하긴, 그들은 본래 진흙에서 났으니 원형이 드러나는 것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진실하고 진실하므로 그의 육신이 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전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행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의 한 면이다. ‘육신’이 형상 있는 영에서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과 ‘사람’의 육신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가리킨다. 차이점은 주로 영에 있다. 형상이 있는 영이라는 것은 신성이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안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지만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고 인성의 제한을 받지도 않음을 가리킨다. ‘영의 형상’이란 완전한 신성을 가리키고, 또한 인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서 하나님의 본래 성품과 고유한 형상대로 살 수 있는데, 정상적이고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위엄과 진노도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성육신’은 사람 관념 속의 하나님을 나타내야만 했기 때문에, 즉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의 실제대로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형상이 있는 영으로 실체화한 것이 아니라 신성이 직접 나타났을 뿐이다. 또 정상 인성을 초월했기 때문에 완전하고 실제적인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의 색채를 어느 정도 띠고 있었으며, 사람 관념 속의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두 차례 성육신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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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핑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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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없었다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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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오늘은 찬양 한 곡을 불러 보거라. 너희가 좋아하고 평소 자주 부르던 곡을 찾아보아라. (하나님 말씀 찬양 ‘티 없이 순수한 사랑’을 부르겠습니다.)

1. ‘사랑’이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간격도 거리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도 추측도 없고 기만도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거리도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만도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배반도 거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무엇을 얻고자, 얼마큼 얻고자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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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0K0U0L-20200207-英《圣经》A-13-Z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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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핑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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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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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사람에게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믿음’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왜 믿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아는 것이 너무 없고 부족함도 너무 많다. 그저 무지몽매하게 나를 믿을 뿐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데도 ‘집요하게’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게 내게 간구하거나 아무렇게나 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나를 알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 사역으로 나를 달리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수많은 권능도 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게 매우 ‘탄복’했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나의 뛰어난 능력을 몹시 흠모하기도 했다. 당시 유대 백성은 내가 의술이 뛰어나고 범상치 않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그 많은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를 앙모하고 나의 그 모든 능력을 참으로 부러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행한 권능을 본 자들은 나를 가까이 따르기 시작했으며, 수천 명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음에도 사람은 나를 훌륭한 의사로만 생각했고, 내가 많은 말로 당시 사람들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제자보다 뛰어난 스승으로만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은 내가 행한 사역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음에도, 그 성경 구절에서 나를 병 고쳐 주는 ‘대단한 의사’, 무지한 자들의 ‘스승’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 나를 ‘인자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은 나의 ‘의술’을 뛰어넘고 심지어는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었지만, 의아하게도 그렇게 명망 높고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나를 보잘것없는 의사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 족속은 나의 은혜 때문에 나를 믿었고 곳곳에서 나를 따랐다. 그 무지하고 식견이 좁은 자들은 그저 내가 나타내는 이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 나를 따랐다. 그들은 나를 유대 족속 중 가장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지도자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을 때,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나를 엘리야 또는 모세라고 하고 가장 오래된 선지자라고도 했으며, 또 최고의 의사라고도 했다. 나 스스로 내가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라고 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나의 어떠함과 신분을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하늘은 본디 내 아버지가 거하는 곳이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전 인류를 구속하고 속량하리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인류의 구속주임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그저 나를 인자한 사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전부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일 뿐,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했고,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이렇게 나를 믿고 있고, 또 이렇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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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궈쯔

저는 미국에서 유학 중인 고등학생 궈즈(果子)라고 합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살 때 어머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종종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셨단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사랑하신단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꼭 하나님께 기도드리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너와 함께 할 거야.”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무슨 일이 생겨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면 하ㅗ나님의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 사역에 대한 미약한 인식은 형제자매와 함께 진리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얻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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