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前分類:복음-간증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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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jpg

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였다.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역하는지, 어떻게 말씀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상상해서 믿든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사역할 때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육신을 통해 행하는 모든 행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 사람이 가졌던 모든 고정 관념은 물거품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죄받지 않았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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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JPG

지금 너희는 다 시련과 연단을 겪고 있는데,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사람은 연단을 겪고 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찬미하게 되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단을 많이 겪을수록 육을 더 잘 저버릴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어째서 연단을 받아야 하겠느냐? 연단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연단을 주는 사역은 어떤 의의가 있겠느냐?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해 깊이 체험하게 될 때면 하나님의 연단이 아주 좋은 것이고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로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고, 연단 속에서 고통받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도 육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음은 괴롭고 고통이 심하더라도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하기 원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저는 흑암에 빠져 있지만 당신을 흡족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제 마음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당신의 사랑을 더 많이 심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이것이 연단 속에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연단을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친해질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맡겨야 한다. 네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너는 연단 속에서 결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정상적으로 바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통도 점점 빈번해질 것이다. 네가 늘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며, 너의 성품도 점점 변화되고 너의 인식도 나날이 늘어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너에게 하나님의 시련이 닥칠 때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면, 그때는 네가 욥과 베드로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연단받은 사랑이라야 강하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시련을 주든 네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다면 너의 사랑은 순결해질 것이고, 너의 믿음도 실질적인 믿음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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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번개’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jpg

‘동방번개’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다 목사, 장로, 전도사에게서 ‘동방번개’를 들어봤겠지만 ‘동방번개’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방번개’의 유래 또한 각 교파에서 천차만별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방번개’를 단지 기독교의 또 하나의 ‘신흥 교파이다’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단, 사교(사이비)이다’라고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 사람에게 이런 잘못된 관점이 있게 된 것은 아직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항상 새롭게 역사하는 원칙과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 취지를 알지 못하는 데다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사탄 성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 사역을 하실 때마다 옛 도(道)를 고수하는 교계의 모독과 핍박과 정죄를 피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새 역사를 받아들여 참 도를 전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각종 날조된 죄명과 명칭이 붙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해 징벌을 받아야만 했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역에서 사역하시면서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사람들에게 풍부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많은 진리를 발표하셔서 확실히 하나님 자신이고, 오시리라고 약속했던 메시아임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오랫동안 고대했던 메시아임을 기어코 믿지 않고 예수님의 사역을 ‘이단’, ‘사이비교’라고 훼방하고 논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또 나사렛에서 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사렛이단’이란 죄명을 씌우고, 바울을 ‘나사렛이단’의 괴수라고 참소하였습니다(사24:5참조). 성경에 기록된 이 사실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유대 지역에서 하신 사역은 하나님이 자신의 경영 계획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는 은혜 시대의 새 사역이었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열심당원(셀롯당)이든 사두개인이든, 진심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주 예수,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따른 연고로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슨 교파나 단체나 당파를 세울 필요도 없으셨거니와 세운 적도 없으셨는데 어떻게 ‘나사렛이단’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사렛이단’이란 명칭은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긴다’는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고 모함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정죄하기 위한 말입니다. 소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미혹과 통제에 유대 백성들은 그들을 좇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성품을 범함으로 징벌받아 이스라엘의 2천년 망국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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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참된 회개를 보았다.jpg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대함에 있어 소돔 성 사람들과 전혀 달랐던 니느웨 사람들의 태도

여기서 ‘무너지리라’는 무슨 의미이냐? 사라진다는 뜻이다. 왜 사라질까? 누가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이냐? 물론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았기에 듣자마자 그 말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이 그 성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악독이 여호와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들은 성과 함께 멸해질 것임을 알아차렸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후 어떻게 하였느냐? 왕부터 백성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성경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

여호와 하나님의 선포를 들은 니느웨 성 사람들은 소돔 성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소돔 성 사람들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여 악에 악을 더했지만, 니느웨 성 사람들은 그 선포를 들은 후 외면하거나 대항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신복하고 금식을 선포하였다. 여기서 ‘신복’이란 무슨 의미이냐?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믿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니느웨 사람들의 실제 행동에 따라 해석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곧 그렇게 할 것임을 믿고 기꺼이 회개하겠다는 뜻이다. 곧 닥쳐올 재앙을 앞두고 니느웨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느냐? 그들은 신복했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그렇다면 니느웨 사람들이 신복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성경에 따르면,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니느웨 사람들이 참으로 신복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신복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고,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다. 이는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소돔 성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대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회개를 표하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니느웨의 백성뿐만 아니라 왕도 그렇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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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마태 복음 25장) : 주님을 맞이하는 슬기로운 다섯처녀

당신은 슬기로운 다섯처녀입니까? 오늘날 빈번히 발생하는 재난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갈수록 많은 재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한 바이러스,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 습격, 호주 화재 등 여러 재난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블러드문도 나타났습니다. 말세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이뤄졌으니 주님은 이미 돌아오신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많은 신도가 어떻게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을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1~4)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서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결국 주님을 맞이했고 천국의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고, 깨어서 기다리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행하는 자들은 슬기로운 처녀로, 주님이 오시면 천국으로 들림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년간 이렇게 실행해 왔고, 지금 여러 재난이 임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사역하면 정말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해 재난 전에 들림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면 슬기로운 다섯처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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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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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인생에 관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소개해 준 본보기로서, 널리 알려진 화제의 인물이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본보기로 세우고 후세 사람들이 칭송하게 하였을까? 물론 이는 하나님을 사랑한 베드로의 행위,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그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났고, 그의 일평생 체험은 도대체 어떠했는지를 알려면, 은혜시대로 돌아가 그때의 풍습과 인심, 그리고 그 시대의 베드로를 살펴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유대의 평범한 농가에서 다섯 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고, 그의 부모는 농사를 지으며 온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주요 화젯거리가 아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심 인물은 바로 베드로다. 베드로의 부모는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의 유대인은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졌는데, 농업, 공업, 상업 등 각 분야에서 모두 뛰어났다. 그런 사회 환경의 영향하에 베드로의 부모 역시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시골 사람이긴 했지만, 지금의 일반 대학생과 대등한 수준의 상당히 풍부한 지식을 가졌다. 베드로가 그런 우월한 사회 조건에서 태어났던 것은 그의 복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총명하고 영리하여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였다. 베드로는 입학한 뒤에 학과 공부에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었기에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부모는 그렇게 총명하고 영리한 아들을 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므로 모든 심혈을 기울여 베드로의 학업을 뒷바라지했고, 그가 두각을 나타내어 당대의 사회에서 말단 관직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새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네 살이 되던 고등학교 시절에 베드로는 수업 과목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해 몹시 염증을 느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역사(歷史)에 등장하는 허구적 인물과 사물에 대해서는 더욱 혐오감을 느꼈다. 그 뒤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베드로는 인생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사회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부모의 고심에 양심으로 보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우롱하는 공간에서 살고 있고, 모두 무의미한 삶을 살면서 공명과 재물을 다투느라 자신의 일생을 망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어느 정도 깨닫게 된 것은 그가 처한 사회 환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사람은 지식이 쌓일수록 사람 간의 관계가 더 복잡해지고 마음속 세계가 더 복잡해지므로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은 갈수록 공허해진다. 베드로는 그런 상황에서 여가 시간에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가 찾아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종교인이었다. 베드로는 종교계에서는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 난해한 일들을 분명하게 얘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그래서 베드로는 당시에 집에서 멀지 않은 한 회당에 자주 가서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베드로의 부모는 그 일을 전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베드로는 공부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의 감독하에 마지못해 고등학교를 마쳤다. 베드로는 지식의 바다에서 뭍으로 헤엄쳐 나오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로부터 베드로를 교육하거나 제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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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jpg

 

하나님의 3단계 역사는 어떻게 단계마다 심화되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합니까?

하나님 말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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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름에 관한 진리1)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뀌었겠느냐?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가진 이가 왔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느냐? 이는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하면 안 된단 말이냐? 과거의 사역도 바뀌었다. 여호와의 사역은 예수가 이어 갔건만, 예수의 사역은 또, 다른 사역으로 이어질 수 없겠느냐?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으면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네 식견이 부족한 것이다. 너는 예수라는 이름이 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예수로 불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예수’라는 이름이 율법시대도 끝내고 마지막 시대도 끝내는 이름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예수의 은혜가 시대를 끝낼 수 있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2)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다. 단지 사역을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으므로 한둘 혹은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피조물인 네가 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의 수용 능력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지만, 사람이 이 이름을 개괄할 수는 없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3) 『하나님은 시대마다 친히 사역할 때면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시대별 성품을 대변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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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는 왜 항상 하나님의 새 사역을 미친듯이 대적하고 정죄하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려고 두 차례나 성육신하여 친히 인간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교계 지도자들의 극렬한 대적과 정죄, 미친듯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이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마다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요? 왜 기고만장하고 미친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로 성경을 숙독하고 오랫동안 주님을 섬긴 교계 지도자들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경건하고 주님께 가장 충성하고 순종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왜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적이 되었을까요? 설마 하나님의 사역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것이 사람의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을 맡고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성령 역사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 역사의 원칙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한적인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만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규정했습니다. 또 하나는, 인류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타락되어 본성이 교만하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지위를 너무 중히 여긴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참 말씀이 인류 역사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버려지고 정죄받는 비극이 형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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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후회가 밀려와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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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시온으로 돌아가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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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아 천국으로.jpg

질문(14) 성경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사함을 받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 받았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곧바로 휴거 되어 천국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구원받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증거하십니까?

답변: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속량, 곧 사함을 받았으니 주님은 더 이상 우리를 인으로 보지 않으실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 받았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끝까지 견디기만 하면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이런 생각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범사에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에 관한 문제는 더더욱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지, 결코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바리새인들처럼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인류 구속의 사역을 끝내신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럼, 그것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난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들림 받아 천국에 갈 자격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 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천국에 가는 사람은 반드시 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결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함을 받은 것만으로 충분히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한 것이며, 순전히 사람의 생각과 상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를 사해 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사함 받은 것이 곧 정결케 된 것이며, 함만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왜 사함을 받았으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 근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 사도들의 말을 근거로 그런 결론을 도출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말, 사도들의 말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말씀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사람의 말이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사람,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가 주님을 믿어 사함 받았다고는 하나 아직 정결케 되지 못했으며 늘 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 11:4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함 받은 것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오직 정결케 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사함 받았다고 해서 정결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의 실제를 갖추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진리를 좋아하기는커녕 싫어하고 증오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오로지 상과 면류관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악을 행하는 자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주님께서 인정하실까요? 외식하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라면 사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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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는 왜 항상 하나님의 새 사역을 미친듯이 대적하고 정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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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려고 두 차례나 성육신하여 친히 인간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교계 지도자들의 극렬한 대적과 정죄, 미친듯한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이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마다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요? 왜 기고만장하고 미친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로 성경을 숙독하고 오랫동안 주님을 섬긴 교계 지도자들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경건하고 주님께 가장 충성하고 순종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왜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적이 되었을까요? 설마 하나님의 사역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신 것이 사람의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을 맡고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성령 역사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 역사의 원칙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한적인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만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규정했습니다. 또 하나는, 인류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타락되어 본성이 교만하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지위를 너무 중히 여긴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참 말씀이 인류 역사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버려지고 정죄받는 비극이 형성되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라고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진리를 선포하고 회개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와 평안과 기쁨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구약성경에는 기록이 없으며 또한 그 누구도 행한 적이 없었던 사역입니다. 물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사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러한 권능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사람을 죄에서 구속하려고 친히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은 율법 규례의 속박에서 벗어나 더 이상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 멸망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성령 역사를 알지 못했고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관념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이고, 율법과 다른 말씀을 전하는 자는 사람을 미혹하는 자이며 성경을 벗어난 것은 이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에 숙독하여 성전에서 여호와를 오랫동안 섬겼다고 자만하며 자신이 지키는 것이 바로 진리이고 가장 순수하고도 올바른 말씀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사역은 율법을 위반하고 성경에서 벗어나는, 성경 밖의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께서 참람한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사역을 ‘이단’, ‘사교(邪敎)’, ‘사람을 미혹하는 일’이라고 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아무리 권능과 능력과 지혜가 있더라도,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신적 기사가 전례 없는 것이라고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예수님이 바로 오실 메시아임을 증거해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관념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율법시대 사역을 지키면서 목을 곧게 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즉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대하는 태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에서 밝힌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사역과 한 가지 실행만 받아들이고 그것과 상반되거나 그보다 더 높은 사역이나 실행은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한다. 그러나 성령은 항상 새로운 사역을 한다. 그리하여 새 사역을 대적하는 한 무리 또 한 무리의 종교 전문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전문가’가 된 까닭은 하나님이 ‘항상 새롭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에 대해 인식이 없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서도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성령에게서 온 역사가 맞는지, 하나님 자신이 한 사역이 맞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수하고 있는 태도는 이전의 이론과 맞으면 받아들이고, 이전의 역사와 다른 점이 있으면 반대하고 거절하는 것이다.』(<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최소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깨우침을 얻어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이 예수님과 여러 번 접촉하고 만난 것은 진리를 구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약점을 잡으려고 갖은 방법으로 시험했던 것이었습니다.(마태복음 22:15~46 참고) 예수님의 사역을 무너뜨리고 무산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다나엘과 사마리아 부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와 백성들도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새 사역에 대해 관념이 있는 건 마찬가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예수님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한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비교해 볼 때,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완고하게 옛 것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만하여 전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한 가지 원인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는 진리와 권능이 있어 사람에게 필요한 생명 공급을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유대교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수하의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누구도 자신들을 따르고 숭배하지 않을까 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렵고도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있는 권능과 능력은 자신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상에 하루라도 더 있으면 점점 더 많은 백성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님을 따를 것이고, 그러면 성전을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어 자신들이 누리던 최고의 생활, 사람들의 떠받듦과 높여줌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어 불구대천의 원수로 되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요한복음 11:47~48)라고 의논하였고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모든 방법과 온갖 비열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해치고, 예수님의 사역을 모독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고 헐뜯었습니다.(마태복음 12:24 참고) 또한 거짓 증거하여 예수님을 치려고 하는가 하면(마가복음 14:55~58 참고) 심지어 로마 정부와 연합하여 예수님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40일간 나타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능력과 기적이 따랐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예수님이 곧 참 하나님이고,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역사와 보호가 있는 참 말씀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교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반성은커녕 도리어 ‘율법을 보호하고 참 말씀을 지킨다’라는 명분을 내걸고 계속해서 수중의 권력을 이용하여 집권 세력과 결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더욱 심하게 탄압하고, 박해하고, 살육하였으며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방해했습니다. 또한 누구도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했으며…. 그들은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진리를 증오하고 그리스도를 적으로 삼는 악마의 본성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미친듯이 대적하고 정죄하는 또 다른 한 가지 원인입니다. 그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유대 민족 전체가 전례 없는 망국의 고통을 맛봄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것에 대해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말세인 지금, 하나님은 자신이 구속한 사람들을 위해 더 큰 구원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구원이 바로 하나님께서 또 한번 성육신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은 사탄의 타락한 성품과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인류가 되며, 구원받아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의 마지막 단계 사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후, 각 종파에서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는 것이 진리의 발현이며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고 줄지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였습니다. ‘만민이 이 산으로 돌아오는’ 진풍경이 나타난 것입니다.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해외 여러 나라와 지역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잇달아 들어서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임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진리, 큰 기사와 성령 역사의 증거에도 교계의 지도자들은 못 본 체 외면하고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성령 역사가 줄곧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새롭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한 가지 이론만을 고집합니다. 주님이 성육신하여 오셨다고 전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고, 예수님의 이름과 다른 것은 모두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다 성경 안에 있고, 성경을 벗어나는 것은 참 말씀이 아니며,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요구를 저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부하며, 설교 사역을 수년 간 했기 때문에 이미 생명을 얻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식하고 깨닫고 지키는 것만이 참 말씀이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이단이자 사교로 치부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글귀 안에서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의 과거 역사 안에서만 하나님을 규정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져오신 사역에 진리와 성령 역사가 있고 그 사역이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수요를 공급하며, 사실로 검증이 되었다 해도 그들은 그 사역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 보기는커녕 그것을 적대시하고 부인합니다. 심지어 하나님 성육신을 모독하고, 말세 그리스도의 역사와 말씀을 비방하고 정죄합니다. 그들은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완고하고 교만할 뿐 아니라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성령을 모독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한 단계 사역만으로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그 인식은 너무 적다 못해 그야말로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원로 종교인들이 잔혹하게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겠는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한 영역에 규정해 놓은 연고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다종다양한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조금뿐인 자신의 지식과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가늠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체험이 천박하면서도 천성이 교만하고 방종하여 성령의 역사를 경시하고 성령의 징계를 소홀히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잘것없는 낡은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입증’하고, 또 자신의 학식이 세계를 두루 다닐 수 있을 만큼 해박하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런 사람은 성령께 버림받는 사람이고, 새 시대에 탈락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하나님 앞에 와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경망스럽게 구는 지식이 얄팍한 소인배들이 아닌가? 그들은 얼마 안 되는 성경 지식으로 세상의 ‘학술계’를 종횡무진하려고 한다. 또 사람이나 가르칠 수 있는 볼품없는 빈약한 도리로 성령의 역사를 변경시키려 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 또 그 짧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6천년 사역의 풍모를 한눈에 보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 또 무슨 이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만 조금 말할 뿐 제멋대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일수록 교만하여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제멋대로 선전하는데, 다 도리이지 실제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런 사람은 가장 무가치한 사람이다. 성령의 사역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은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그들은 성령의 새 역사를 만나도 신중하게 대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제멋대로 평가하며, 자신의 성질대로 성령 사역의 정확성을 부인하고 또한 욕설하거나 모독하기도 한다. 이렇게 거만한 사람은 성령 사역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성적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자들이 아닌가?』(<3단계 역사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경로이다> 중에서)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로 돌아오면서 하나님 말세 사역은 점차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성령 역사가 이렇게 성황을 이루어도, 높이 떠받듦에 습관된 종교의 지도자들과 사람을 지휘하는 종교의 전문가들은 반성하거나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지위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절부절 못하고, 사람들이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아무도 자신들을 따르지 않아 교회가 문을 닫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세를 되돌리기’ 위해 각 종파의 목사와 장로, 리더와 사역자들은 ‘주님을 위해 양떼를 지키고 참 말씀을 수호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부정적인 선전 자료를 날조하여 인쇄하고 배포하는 것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공격합니다. 그리고 각종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민중들이 일어서서 하나님께 대적하자고 선동합니다. 또한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과 진실을 뒤바꾸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이단이라고 중상 모략하고, 크리스천들이 ‘동방번개’ 서적을 보거나 ‘동방번개’의 말씀을 듣는 것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또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전하는 사람, 심지어 낯선 사람도 대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은혜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손님을 대접하라고 하신 가르침에 완전히 위배됩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씨가 착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들이 말세의 구원 사역을 전하는 데는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도 역시 압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들을 무자비하게 모욕하고, 내쫓고, 심지어 구타하기까지 합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중공의 사탄 정부와 결탁하여 주님을 배반하고 친구를 배반하는 짓을 거리낌없이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세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들을 미행하고, 감시하고, 신고할 뿐만 아니라 스파이 노릇을 하며 몰래 크리스천들을 붙잡도록 중공 정부에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일망타진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무산시켜야만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가 봅니다. 이런 교계의 지도자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한 종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마태복음 21:33~41)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말세에 교계의 목사와 장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것과 유대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한 근원은 같습니다. 모두 다 지위를 도모하고 이익을 위해 뛰어다니며, 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질이 명백히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유대교의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드러내셨고, 말세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을 철저히 드러내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누구도 교계의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체를 간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나타나 하신 역사는 실로 사람을 명확하게 드러내십니다.

여기까지 교제하면 교계에서 늘 하나님의 새 사역을 대적하는 근본 원인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바리새인들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면서 정작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해서는 구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고 무작정 거부하고 대적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이스라엘은 2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무수히 많은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은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곧 영광을 얻은 기세로 끝을 알릴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만국 만민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목사와 장로를 믿고 따라야 할지, 아니면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알아보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여러분은 하나님의 양입니까?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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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2).jpg

질문(1)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신도들을 들어 천국으로 인도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라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미 재림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되지 못하고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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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욥의 삶에서 나타난 3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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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13편 서신’을 어떻게 보느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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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제9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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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하여 1

성경에 관하여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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