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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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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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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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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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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인생에 관하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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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입니까.jpg

 

질문(6) 성경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 내리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17)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타남이요, 하나님 자신이고,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 자신이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인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입니까? 이 두 가지 주장이 모두 나름 일리가 있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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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jpg

 

사람의 상상 속에는,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하나님은 식은 죽 먹기로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람이 달성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할 엄두도 못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0.1%’만을 요구했다. 이 사실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고 또한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더더욱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깨우침과 은총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지만 3월 1일 바로 그날, 모든 사람은 또 우왕좌왕하며 머리만 긁적였다. 백성에게 떠다니는 구름이 아니라 새하얀 눈이 되라고 했는데, 그럼 ‘새하얀 눈’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일까? ‘떠다니는 구름’은 또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일까? 거기에서 하나님은 일부러 그 내포된 의미를 말씀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모두 짙은 안개 속으로 빠지게 하여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찾게 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백성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 모든 사람은 측량하기 어려운 이 어휘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생각’들이 마음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게다가 눈앞에는 흩날리는 눈송이가 아른거리고, 머릿속에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연상되었다. 그럼 하나님은 왜 백성에게 떠다니는 구름이 되지 말고 새하얀 눈이 되라고 했을까? 그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새하얀 눈’은 대자연을 아름답게 물들일 뿐만 아니라 살균 소독 효과가 있어 농경지에도 유익한 가치 있는 존재이다. 큰 눈이 내리고 나면 모든 병균이 새하얀 눈에 뒤덮이게 되고, 또한 공간 전체가 삽시간에 생기로 넘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백성이 된 자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사실로부터 자기 자신을 이기고 정상 인성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큰 눈이 대자연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일면이다. 나중에는 백성들이 성숙해짐으로 큰 붉은 용을 끝장내고 하나님의 땅의 나라를 세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널리 전파할 것이다. 그리하여 땅에 있는 모든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충만하고, 땅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빛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할 것이다. 이로써 곳곳에는 편히 지내며 즐겁게 일하고, 행복 가득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항상 새롭게 펼쳐지는 국면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 현 단계에 존재하는 각종 전염병인 사탄이 패괴시킨 성품을 ― 불의, 교활함과 간사함, 사욕과 악한 정욕 등의 이런 병균을 ― 모두 소멸시키고, 따라서 하늘도, 땅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큰 눈이 내린 뒤’의 진정한 의미이다. 떠다니는 구름이 된다면 하나님이 말씀한 ‘부화뇌동’하는 부류처럼, 사탄이 시험하거나 하나님이 시련을 주면 즉시 날려 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본질조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일찌감치 사라질 존재인 것이다. 떠다니는 구름이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되게 할 것이다. 이 부류는 언제 어디서나 노략당할 위험이 존재하며, 사탄이 삼켜 버릴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탄에게 노략당할 때면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에게 봉사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현저하게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자이자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정상인의 본질도 없고, 실질적인 사용 가치도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백성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 사람들은 그 말씀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되었지만 그 뒤로는 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했다. 하나님이 화제를 또 자신에게로 돌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로 인해 난감해졌다. “나는 본래 거룩한 곳에서 왔으므로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는 연꽃과는 전혀 다르다. 연꽃은 본래 진흙에서 온 것이지, 거룩한 곳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백성에게 요구한 뒤에 하나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얘기했을까? 혹시 그 속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확실히 그 양자 사이에는 내재적인 연관성이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들바람을 타고 푸른 잎 사이에서 하늘거리는 연꽃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며, 너무나 사랑스럽다. 정말 당장이라도 헤엄쳐 가 한 송이를 꺾어 자세히 보고 싶을 정도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진흙에서 왔고, 이름만 있을 뿐 본질은 없다고 말씀했다. 보아하니, 하나님은 연꽃을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그의 말씀에 혐오감도 어느 정도 담고 있음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어도 더럽지 않다’는 말로 인해 연꽃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지 모르며, 심지어 너무도 좋아서 거의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는 듯 묘사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기에 연꽃은 아무 가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이로부터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는 하늘 꼭대기에서 땅바닥까지의 거리만큼 크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므로 필요한 영양분도 진흙에서 나온다. 다만 연꽃은 변장으로 자신을 꾸밀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 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꽃의 아름다운 겉모습만 보았을 뿐, 연꽃 안의 생명이 불결한 데다가 더럽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연꽃에는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다고 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조금의 거짓도 없는 완전한 사실이다. 오늘날의 백성도 이와 같지 않으냐? 그저 겉으로만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흡족해할까 하여 하나님 앞에서 환심을 사고 자신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탄의 패괴 성품이 자리하고, 뱃속은 불순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 불순물이 섞이지는 않았는지, 일편단심으로 순수한지를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사자 시절에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미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욕하고, 입으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입으로 소극적인 말을 하며 마음으로 몰래 하나님을 대적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행동까지 서로 보조가 맞았다. 입으로 음탕한 말을 뱉고, 손짓을 해 대며, 극히 방탕하여 큰 붉은 용의 본색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냈는데, 정말로 큰 붉은 용의 자손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랬음에도 오늘날에는 ‘충성스러운 봉사자’의 자리에 서서 ‘충성스러운’ 백성의 역할을 맡고 있으니, 정말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하긴, 그들은 본래 진흙에서 났으니 원형이 드러나는 것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진실하고 진실하므로 그의 육신이 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전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행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의 한 면이다. ‘육신’이 형상 있는 영에서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과 ‘사람’의 육신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가리킨다. 차이점은 주로 영에 있다. 형상이 있는 영이라는 것은 신성이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안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지만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고 인성의 제한을 받지도 않음을 가리킨다. ‘영의 형상’이란 완전한 신성을 가리키고, 또한 인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서 하나님의 본래 성품과 고유한 형상대로 살 수 있는데, 정상적이고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위엄과 진노도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성육신’은 사람 관념 속의 하나님을 나타내야만 했기 때문에, 즉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예언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의 실제대로 산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형상이 있는 영으로 실체화한 것이 아니라 신성이 직접 나타났을 뿐이다. 또 정상 인성을 초월했기 때문에 완전하고 실제적인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의 색채를 어느 정도 띠고 있었으며, 사람 관념 속의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두 차례 성육신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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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책을 펼치고 심판을 하시는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1) 『전능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완전한 참하나님이시라! 그는 일곱 별과 일곱 영, 일곱 눈을 갖고 있으며,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친다. 나아가 그는 일곱 재앙과 일곱 대접을 주관하고, 일곱 우레를 떼며, 일찍이 일곱 나팔을 울렸도다! 그가 창조한 만물과 그가 온전케 한 모든 것은 마땅히 그를 향해 찬미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의 보좌를 높이 받들어야 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바로 모든 것이나이다.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셨나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온전케 하고, 모든 것을 밝게 하며, 모든 것을 해방시키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며, 모든 것을 힘 있고 굳세게 하시나이다! 당신은 모든 비밀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숨김없이 다 여셨나이다. 또한, 당신은 원수들을 심판하고 위엄과 맹렬한 불, 그리고 진노를 나타내셨나이다. 더구나 미증유의 영광,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속하는, 무한한 모든 영광을 나타내셨나이다! 만민은 모두 깨어나 힘껏 환호하고 노래하며, 이 전능하고 참되며, 살아 있으면서 모든 것을 갖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광의 참하나님을 찬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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