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는 모르시죠?
지금 인터넷 여러 사이트에서 많은 이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며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아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이 당신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시를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사역이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아 찾고 구하며 알아보기를 거절했을 수도 있어요.
어쨌건 주님은 이미 돌아오셨고 새 이름으로 바꾸셨는데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새로운 사역을 하시고 점점 더 많은 사람, 하나님의 나타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말씀 사역을 알아본 후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렸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의 재림임을 알아보고 속속히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어요. 게다가 이미 한 무리 사람들이 재난 전에 이긴 자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지 알고 싶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말세 심판 사역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지 알고 싶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 아래그림을 클릭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고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도록 도와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
(1992년 5월~1993년 2월)
하나님 선민들은 죽음의 시련을 겪고 난 후, 육의 미래와 소망을 내려놓고, 살아서 천국에 들어가려던 헛된 바람도 접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탄 성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 역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수동적으로 순종하기만 할 뿐, 적극적인 방면으로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람에게 시련을 주어 정결케 하는 역사를 하시면서 드러낸 것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인류에 대한 진실된 사랑과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무감각하고 우둔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함,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로 사람들을 이끄셨습니다.
1992년 5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42편>과 비밀에 대한 해석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명확한 목표를 주심으로써,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여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며,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결정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은 앞으로의 일을 예언한 것으로, 다음 단계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 사람들에게 할 사역을 거의 다 했으니, 이제 ‘진노’의 방식으로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이 “나는 땅에 있는 사람이 내 모든 행사를 인정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내 행사가 ‘심판대’ 앞에서 증명되게 하여 온 땅에 있는 사람이 내 행사를 공인하고 굴복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말이다. … 이 기간에 큰 붉은 용의 나라에 거주하는 자는 모두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땅에 있는 ‘하나님나라’(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때 바로 사실이 임하니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바로 이 사역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이 바로 원대한 계획을 펼칠 때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앞으로는 땅에 교회가 없기 때문에, 또 재난이 임하기 때문에 사람은 눈앞의 일에 허덕이느라 재난 속에서 하나님을 누리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금 좋은 시절에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지나가면 하나님은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물리칠 것이고, 백성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도 끝날 것이다. 그 후 하나님은 다음 단계의 일을 시작하여 큰 붉은 용의 나라를 철저히 멸망시키고, 마지막에는 전 우주의 사람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은 다음 전 인류를 멸할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사역 절차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의 평화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가 없다. 육으로 있을 때만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가 있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 사람이 아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의 직무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생각해 보았느냐? 죽음에 이르러서야 사랑할 것이냐? 그건 빈말이 아니냐? 지금은 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느냐? ‘분주히’ 보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현 단계 사역이 곧 끝난다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이미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사람이 뭔가를 할 필요가 없으며,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관건이다. 하나님의 요구가 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이 몹시 애타기 때문에 지금의 사역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다음 단계 사역의 주요 사항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면 미리 이런 말씀을 하겠느냐?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이니 너희가 자기 목숨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길 바란다. 이것이 바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 또 어디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42편> 중에서)
불완전한 인성을 가진 예수가 한 것과 대조해 보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완전한 인성을 가진 너희는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느냐? 예수의 십 분의 일이라도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오를 자격이 있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탄을 모욕할 정도가 되느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없앴느냐?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었느냐? 정말 모든 것을 감내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 과거의 베드로를 생각하다 오늘날의 너희를 보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라 너희는 하나님 앞에 설 자격도 없다. 너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소가 많으냐, 마귀를 사랑하는 요소가 많으냐? 이것은 반드시 저울의 좌우 판에 올려서 어느 쪽이 올라가는지 재 봐야 한다. 너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요소는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 앞에서 죽을 자격이 되느냐? 예수가 십자가에서 굳게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땅에서의 체험이 사탄에게 치욕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과감하게 예수에게 그 사역을 완수하게 한 것이다. 이는 예수가 받은 고통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기에 마음속에 다른 것 없이 오직 하나님만 남을 때까지 계속 체험해야 한다. 이를 해낼 수 있겠느냐? 여기서 하나님을 증오하는 요소가 얼마나 되는지, 사랑하는 요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너무 지나치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사정이 그렇지 않으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점이 얼마나 있는지, 너 자신에게 가증스러운 점이 얼마나 있는지 찾아보아라. 이런 것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천하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서 세계 기록을 깨는 선구자가 될 수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44편과 제45편>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서,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 손안에 있고 누구도 죽음의 관문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모두들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하나님 지배에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죽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역사하시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고 진리를 얻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내고, 하나님 영광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신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손수 인류를 만드셨고, 계속해서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과 사역을 하시면서 사람을 인도하고, 인류를 구속하고 구원하십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큽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으니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데다가 사탄 본성과 복을 얻으려는 속셈에 얽매어 하나님을 사랑하려 해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사탄 본성에 얽매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사탄 본성을 미워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다가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함으로써 점차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사람에게 사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느껴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 마음과 합하는 경지에 도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탄 성품과 더러움, 패괴로 가득하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벌을 받아 마땅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하나님을 사랑할 자격도 없는데, 오늘날 하나님은 사람을 내버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를 주셨으니, 이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파격적으로 사람을 높여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다수의 하나님 선민들은 너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히 느꼈고,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길 추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께 봉헌하고, 헌신하며, 열심히 뛰고 사역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가고 고통받을 수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서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일 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사랑’에는 불순물이 가득하고, 사람의 거래 관점과 복을 얻으려는 속셈이 섞여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요구 기준과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은 단일하고 순결한 사랑이며, 거래나 요구가 들어있지 않고, 보수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자기를 위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고, 목숨을 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시련과 연단을 주셔도, 또한 나중에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을지 여부를 떠나,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최후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힘으로써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사랑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이토록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림과 동시에 과거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어떤 이는 “저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얻으려고만 했을 뿐입니다.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이 저를 축복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지만, 제게 시련을 주고 저의 앞날과 종착지를 앗아 가셨을 때는 원망하고, 따지려 들고, 대항했습니다. 이렇듯 사탄 성품이 변화되지 않아 언제든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니 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스스로를 반성하고 뉘우쳤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고, 공의롭고, 거스를 수 없으며,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사탄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오래 믿었든,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신 이유는 사람들을 삶의 바른길로 이끌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과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1992년 6월 1일,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47편>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절절하고 애틋한 감정이 담겨 있으며,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창세부터 나는 말세에 나와 한마음 한뜻이 되는 한 무리의 사람을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또한, 말세에 이 땅에 본보기를 만든 후 내 거처로 돌아갈 것이라고도 예언했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만족게 할 때는 내가 요구한 것이 이뤄진 때요, 그때부터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더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사람과 함께 옛정을 나눌 것이다. 그다음 우리는 헤어진다. 나는 이 사역에 착수하여 사람이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내 뜻을 알게 한다. 나를 오해하지 말라. 내가 너무 무정하다고 여기거나 너무 의리 없다고 여기지 말라. 이런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게 적합한 안식처가 있기를 원하지 않는단 말이냐? 사람은 나를 위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부르짖을 의향이 없단 말이냐? 사람은 예전에 나를 위해 동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더냐? 우리 부자가 빨리 만나도록 해 주지 않았더냐? 그런데 왜 지금은 원하지 않는 것이냐? 나는 땅에서의 직분을 이미 다하였는데,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사람을 도울 것이다. 이러면 좋지 않으냐? 더 나은 사역 성과를 위해, 우리 서로의 이로움을 위해 아픔을 참고 이쯤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자. 나는 더 이상 사람을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사람에게 많은 말을 했고, 하는 말마다 사람의 마음을 찔러 슬퍼하며 눈물 흘리게 하였다. 여기서 사람에게 사과하니 나를 미워하지 말고 양해해 주길 바란다. 다 사람을 위한 것이었으니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지난 세월 우리 사이에는 말다툼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우리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다툼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우의의 다리가 놓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함께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가 아니냐? 우리는 이를 누림으로 여겨야 한다. 과거 나의 ‘과실’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한다. 나도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겠다. 앞으로 사람이 내게 ‘사랑’을 주기만 한다면 하늘에 있는 내 영이 위안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다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 마지막 요구에 대해 나를 만족게 할 의향이 있느냐? 나는 사람이 뭔가 하길 바라지 않고 그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다. 할 수 있겠느냐? 우리 사이에서 불쾌했던 일들은 지워 버리고, 사랑만 영원히 남게 하자. 나는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고, 사람도 나를 사랑하며 많은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우리 사이의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을 소중히 하여 우리 사랑이 인간 세상에 널리 퍼지고 영원히 전해지길 바란다. 우리가 재회할 때에도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우리의 ‘애정’이 길이 남고 모든 사람이 이를 미담으로 널리 칭송하게 하자. 그러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이다. 사람이 내 당부를 잘 기억해 두길 바란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47편> 중에서)
그때 하나님 선민들은 그 말씀이 예언의 말씀임을 모르고, 하나님이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당신의 처소인 시온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고, 하나님을 보내기가 싫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역사를 시작한 이후, 거의 하루 이틀에 한 편씩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 선민들에게 공급하셨고, 어느덧 하나님 말씀은 늘 사람들에게 도움과 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었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께서 곧 사람과 헤어져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지 않으실 거라는 소식에 마치 부모를 떠나는 아이처럼 기댈 곳과 길잡이, 기둥을 잃어버렸습니다.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척이나 허전하고, 무기력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고 역사하신 동안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오해하고, 원망했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떠올리며 크게 뉘우치고 자책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비록 엄하고,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며 일부러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심지어 앞날과 종착지에 대해 박탈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의 패괴된 정도에 근거하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봉사자의 시련이 없었더라면 사람이 복을 받으려는 속셈과 욕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 역시 이를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며, 더욱이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을 때의 잘못된 관점도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음의 시련을 겪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진작에 사탄의 후예가 되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로 사람을 이끌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육만을 위해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벌 속에 떨어져, 하나님을 믿을 때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를 것이며,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사람에 대한 구원이자 사랑임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또한 각 단계 역사에 걸리는 시간, 말씀의 양과 정도, 말씀의 방식과 어투, 공급되는 진리,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배치하고 안배하신 것으로, 그 안에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다는 것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실제적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진정한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고심도 이해하지 못한 채 길들여지지 않은 야인처럼 하나님과 부딪히고 힘을 겨루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고, 사탄 성품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함과 동시에 사람의 패역과 대적을 계속 견디면서 결코 사람에게 따져 묻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사람과 헤어질 때에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인자한 어머니의 말처럼 말씀 안에 일깨움과 권면, 부탁, 추억을 담아 사람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에게 사과까지 하시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사람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더는 사람에게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더 이상 사람과의 갈등은 없을 것이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 선민들은 더 크게 뉘우치고 자책했으며, 하나님께 너무나 죄스럽게 느껴졌고, 하나님을 보내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덧 하나님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자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위기 속에 살면서 복을 받든 화를 받든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로 다짐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많은 이들은 일과 가정을 내던지고 교회 사역에 임했으며, 하나님 선민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를 겪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공과이자 사람이 한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 이룬 성과입니다.
부각물의 시련
(1993년 3월~1993년 5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가 끝난 뒤, 하나님은 <성육신의 비밀> 1~4편과 <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를 선포하여 성육신의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하나님 선민들은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모습을 나타내시어 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었음을 알아차리고 크게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림전 제4장 참조). 그러나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치스런 욕망이 내면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봉사자의 시련과 죽음의 시련을 겪는다고 철저히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앞날과 운명에 관계된 일이라면 여전히 무척 민감하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복을 바라는 속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 성품이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지위와 앞날, 종착지를 추구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부각물의 시련으로 이끌었습니다.
1993년 3월 1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복 사역의 실상 1>을 선포하셨습니다. 중국인들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상이 뒤처지고, 인성이 저열하며, 자질 수준이 낮고, 가장 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패괴된 인류의 전형임을 폭로하셨습니다. 또한, 만약 하나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겪고도 성품이 변화되지 않고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모두 하나님 역사의 부각물이 되어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부각물’이라는 세 글자를 수차례 언급하심으로써 하나님 선민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인류를 정복하겠느냐?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을 통해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고, 폭로, 심판, 형벌과 무자비한 저주로 철저히 인정하게 한다. 또 사람의 패역을 폭로하고 사람의 대적을 심판하여 인류의 불의와 더러움을 알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킨다. 주로 이런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 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지금은 중국 사람들에게 하는 사역을 통해 이 사람들의 패역한 성품을 모두 드러내고 추악한 모습을 다 들추어낸다. 이것을 배경으로 모든 말씀을 마치고, 그 후 전 우주를 정복하는 다음 단계 사역을 할 것이다. 너희를 심판함으로써 전 우주 사람들의 불의를 심판하는 것이다. 너희는 인류의 패역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부각물이 되고 봉사하는 존재가 될 것이며, 따라오는 사람은 쓰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왜 부각물이라고 하겠느냐? 그것은 지금 사역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너희의 상황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이고, 또 너희는 인류 중 패역자의 대표이자 전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너희를 정복하는 이 말씀들을 외국으로 가져가 외국 사람들을 정복할 텐데, 네가 얻지 못한다면 부각물에 속하지 않겠느냐? 전 인류의 패괴 성품, 사람의 패역한 행위, 사람의 이런 추한 모습과 면모가 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각 나라와 각 교파의 사람들을 정복할 것이다. 이는 너희가 본보기이고 선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러 너희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네가 제대로 추구하지 않아 구제 불능이 된다면 완전히 봉사만 하는 존재, 부각물이 아니겠느냐? 나는 예전에 나의 지혜는 사탄의 간계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 말을 했겠느냐? 그것이 지금 내가 말하고 사역하는 실상 아니겠느냐? 네가 따라오지 못해 온전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면, 부각물에 속하지 않겠느냐?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는 많은 고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여 생명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며, 형벌과 심판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 변화도 없고 생명을 얻지도 못했다면, 공사를 점검할 때 불 같은 시련과 더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 불이 닥치면 너는 송두리째 재가 될 것이다. 너에게 생명이 없고, 정금의 성분이 전혀 없으며, 예전의 패괴 성품이 변함없고, 부각물이 된다 해도 좋은 부각물이 될 수 없다면, 너를 도태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복 사역을 할 때 한 푼의 가치도 없고 생명도 없는 사람을 쓸 수 있겠느냐? 그때가 되면 너희는 노아와 소돔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 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부각물이 도태되는 대상임을 알고 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많은 이들은 부각물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 줄곧 부각물을 언급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부각물의 결말이 어떤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나라 백성인지 아니면 부각물인지, 부각물은 하나님나라 백성이 맞는지 아닌지, 부각물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때의 하나님 선민들은 ‘부각물’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고, 다만 자신의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많은 화제들을 얘기하셨고, 하나님 선민들은 정복당함, 온전케 됨, 모형과 표본, 이긴 자 등에 대한 말씀을 쉽게 받아들였지만 부각물에 대해 언급하자, 무척 예민해지면서 ’자신이 부각물이 맞는지 아닌지, 나중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실제 내막을 하나님께 듣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알아야 마음이 놓이고, 계속해서 추구해 나갈 믿음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 나는 너희를 미워하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축복한 적이 없다. 아니, 너희를 축복할 생각도, 온전케 할 마음도 없다. 너희는 너무나 패역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교활함과 간사함 때문에, 너희의 부족한 자질과 낮은 지위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너희를 안중에 둔 적이 없으며, 마음에 둔 적도 없다. 나는 너희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사역한다. 나의 손과 형벌은 줄곧 너희를 떠나지 않았으며, 나는 언제나 너희를 심판하고 저주한다.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기에 너희에 대한 내 분노는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너희 가운데서 계속 역사하고 있지만, 너희에 대한 내 태도가 어떤지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오직 혐오하기만 할 뿐, 다른 태도도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너희를 통해 나의 지혜와 큰 능력을 부각시킬 뿐이다. 너희는 나의 부각물에 불과하다. 나의 공의가 너희의 패역을 통해 더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내 사역의 부각물, 그리고 부속물로 삼았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사역>에 대해 보다 더 상세히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부각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어투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고, 엄한 심판의 말씀 속에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서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모두들 눈앞이 캄캄하고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들 이제는 봉사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줄 알았고, 또한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만드시려던 모형이자 표본, 이기는 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도리어 하나님이 미워하는 부각물이 된 것입니다. 부각물은 생명이 없고 폐물에 지나지 않으며 봉사자만도 못합니다. 봉사자는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 힘이라도 쓸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지만, 부각물은 그저 하나님 역사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부각시킨 다음에는 버려지고 도태될 뿐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 선민들은 복을 받을 거라는 희망을 또다시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도 일도 포기하고 적잖이 고생했는데 어째서 ‘부각물’이라는 호칭을 얻은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왜 하필 중국에서 태어났을까? 큰 붉은 용이 중국인들을 깊이 패괴시키지만 않았다면 내가 부각물이 되었겠어?’라고 원망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어차피 우리가 ‘부각물’이라면 왜 애초에 우리를 봉사자에서 백성으로 전환시키고, 또한 우리를 모형, 표본으로 온전케 하실 거라고 하셨나요?’라고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각물’이라는 호칭 때문에 속으로 하나님과 실랑이를 벌이고, 의기소침해지고, 하나님께 대항했습니다. 비록 봉사자의 시련을 겪을 때처럼 고통에 겨워 하늘을 향해 탄식하거나 목놓아 울지는 않았어도,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사라져, 예배하고 교제할 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찬양을 할 때도 기운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서 봉사자의 시련을 겪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무저갱에 떨어지리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극도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겪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복을 바라던 속셈도 다소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모두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함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고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고, “하나님께 평생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했던 처음의 굳은 맹세까지 떠올리니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해서 또다시 하나님께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까닭에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해 하나님을 사랑하길 뜨겁게 추구하던 예전의 열기는 크게 사그라들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3년 3월 29일과 4월 3일에 사람의 내적 상태를 겨냥하여 <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라는 말씀 두 편을 잇따라 선포하시어, ‘부각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성심성의껏 교통해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땅히 그동안 하나님이 했던 말씀들을 많이 보고 또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조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네가 부정할 수 없는 부각물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더냐! 지금 네 인식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느냐? 네 마음과 생각, 처신, 언행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 않더냐? 너희가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한 패괴 성품 아니더냐? 너의 마음과 생각, 속셈,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똑같이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고, 똑같이 더러운 세상에서 생활하지만 그는 이성과 식견을 갖추었다. 그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며, 너의 언행과 너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더러운 것까지 모두 발견하고 짚어 줄 수 있다. 오늘날, 네가 지닌 낡은 것들, 교양도 식견도 이성도 없는 모습과 낡아 빠진 생활 방식들을 하나님은 전부 폭로하며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렇게 사역하기에 사람은 그의 거룩함과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너를 심판하고 형벌하여 인식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네게서 마귀의 본성이 드러날 때 그것을 짚어 줄 수 있다. 그는 너희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환경에서 살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너를 드러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사람의 처세 철학이나 간사함, 교활함은 모두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사람의 육적인 왕래를 증오한다. 그는 사람의 처세 철학은 모르지만 사람이 드러낸 패괴 성품은 꿰뚫어 볼 뿐만 아니라 폭로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가르침을 주는 사역을 한다.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며, 그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보여 준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부각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인해 사람의 각종 패괴 성품과 사탄의 모든 추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너를 벌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거룩함을 부각시키는 역할만 하게 해도 너는 스스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더럽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드러낸 것을 대상으로 말씀하며, 사람에게 있는 것들을 다 폭로한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의 지극한 거룩함을 알게 된다. 그는 사람에게 있는 더러움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나아가 사람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이나 그의 뜻에 맞지 않는 언행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존재의 더러움도 남김없이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럴 때 너는 비로소 그가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며, 사람에게 존재하는 아주 작은 더러움까지 그가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은 왜 늘 화만 내십니까? 왜 사람의 연약함을 봐주지 않으십니까? 왜 사람을 조금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왜 이리도 매몰차십니까? 인간이 얼마나 패괴되었는지 다 아시면서 왜 이렇게 대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죄를 혐오하며 증오하기에 네게 조금이라도 패역이 있으면 그것을 극히 혐오한다. 네가 패역한 성품을 보이는 즉시 그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너 자신을 비춰 본다면 비록 그가 사람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누리며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일상을 보낼지라도 사람과는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각물의 의의 아니겠느냐? 사람의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부각하고, 어둠으로 빛의 소중함을 부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러 너희를 부각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사역의 결과가 나와야 사람의 패역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켜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부각물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닌 공의로운 성품의 자연적 발로를 알게 될 기회도 생긴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패역으로 인해 심판과 형벌을 받았지만, 또 그 패역으로 인해 부각물이 되었고 하나님이 베푸는 크나큰 은혜를 얻었다. 너희의 패역이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부각시켰으며, 너희 또한 패역으로 인해 이토록 큰 구원의 은혜와 복을 얻게 된 것이다. 비록 너희가 수차례 나의 심판을 받았지만 너희는 과거의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한 큰 구원을 얻었으니 이 사역은 너희에게 크나큰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따라서 ‘부각물’은 너희에게 있어서도 그 가치가 크다. 너희는 부각물이 됨으로써 구원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 그러니 이런 부각물이 되는 것이 값지지 않겠느냐? 그 의의가 크지 않겠느냐? 너희는 하나님과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고 더러운 땅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었기에 부각물이 될 수 있었고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다. 성육신이 아니라면 누가 너희를 긍휼히 여길 것이며, 누가 너희같이 비천한 자들을 돌보겠느냐? 또 누가 너희를 걱정하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또 언제 그 누구도 얻은 적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느냐? 내가 성육신으로 임하여 너희를 걱정하지 않고 또 너희의 죄를 심판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진작에 타락해 음부에 떨어지지 않았겠느냐? 내가 육신을 입고 너희 가운데 임하여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부각시킬 자격이 주어졌겠느냐? 너희가 부각물이 된 것도 다 내가 육신을 입고 너희 가운데 임하여 이 크나큰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너희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도 다 내가 성육신한 덕분 아니더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너희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자신이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 지옥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너희가 형벌과 심판을 받는 이유도 육신을 입고 행하는 나의 사역을 부각시키는 데 있지 않더냐? 부각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없이 합당하다. 그런 역할을 함으로써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대로 부각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일생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너희는 단지 부각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지만 그 덕에 여태껏 한 번도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지금 부각물 역할을 하는 것은 너희의 본분이며, 앞으로 누리게 될 영원한 복은 너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상이다. 너희가 얻은 구원의 은혜는 오늘날에 얻은 깨달음이나 인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욱 큰 축복이고 영원한 생명의 존속이다. 비록 내가 ‘부각물’이라는 형식을 빌려 너희를 정복했지만, 너희는 이 구원의 은혜와 복이 모두 너희를 얻고자 함이며 너희를 정복하는 것이자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부각물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너희는 자신의 패역 때문에 부각물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누구도 얻지 못한 복을 받게 되었다. 오늘은 너희에게 보여 주고 들려줄 것이며, 내일은 너희에게 얻게 하고 더 큰 축복을 이어받게 할 것이니, 이런 부각물은 무엇보다 값진 것 아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부각물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살면서 큰 붉은 용의 교육과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패괴되어 왔으며, 사탄의 철학과 무신론, 진화론 등 황당무계한 논리와 허튼소리가 사람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탓에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악하고 진리에 위배되는 것들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사탄 성품을 드러내든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자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정곡을 찌르는 말씀으로 사람의 교만함, 간사함, 이기심, 탐욕, 사악함 등 사탄 성품을 모두 밝히시자 하나님 선민들은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고 폭로하실 때, 죄와 사악함을 증오하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보았습니다.
마치 흑암이 광명을 도드라지게 하듯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악함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인은 사탄에게 가장 깊이 패괴되어 사탄 성품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전형인데, 하나님은 중국인의 패괴와 사악함을 폭로하고 심판하셔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거룩한 본질을 온전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중국의 하나님 선민들에게 사역하시면서 선포한 진리로 각국 각지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십니다. 중국의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인류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하고, 모두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을 찬미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선민들 역시 하나님이 중국인을 부각물이라고 폭로하신 것은 사람을 도태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기 위함이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다면 여전히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밖에도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장래와 지위를 중요시하는 건 사탄 성품의 전형이라고 밝히시며, 사람에게 생명 진입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지금 이런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사역 절차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변화될 수 있다. 너희의 추구에는 자기만의 관념과 기대, 미래에 대한 바람이 너무나 많다. 현재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바로 지위에 대한 너희의 마음과 지나친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기대와 지위, 관념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성품을 대변한다. 사람의 마음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종일관 사탄의 그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하여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맞게 마련해 주셔야 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거야. 어떤 사람보다도 지위가 높고 앞날이 밝아야 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셔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사람의 생존에 토대가 된 사상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은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변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귀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 현재 너희의 사상과 관점이 이렇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이상 복을 받아야 하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관점이 너희 머릿속에 자리 잡힌 건 1~2년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랜 세월 그래 온 것이다. 너희는 장삿속이 아주 발달했다.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지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채 바득바득 ‘추궁’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같이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런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안일을 탐하는 마음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심판하면 너희가 궁극적으로 얼마나 깨닫게 되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누렸다고 말할 것이며, 지위가 없는 것은 너희의 출생이 미천하기 때문이고, 지위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과 베풀어 주심 때문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너희가 직접 하나님께 훈련받고, 하나님께 형벌과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하나님이 높여 주신 덕분이다. 또한 직접 하나님께 정결함과 불사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 덕분이다. 역대 이래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정결케 함과 불사름을 받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지 못했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며, 너희를 정결케 하고 너희 속에 있는 패역을 드러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높여 준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다윗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니 자랑할 것이 없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요구가 없다. 너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게 지위가 생기든 안 생기든 저는 이제 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높은 지위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낮은 지위가 차례진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서 살게 하셨으니 저는 당신의 권세에 오롯이 순종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지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유황불 못에 넣으신다고 해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하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자, 당신께서 지으신 인류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만드셨고, 오늘날 또 저를 당신의 손안에서 지배하시니 저는 당신의 도구, 당신의 부각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이러면 너는 지위 따위를 중시하지 않고 해방을 받게 된다. 그래야 너는 담대하게 추구해 나가고, 너의 마음이 그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람은 거기에서 풀려나면 어떤 염려도 하지 않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모두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는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여, 기꺼이 가정, 결혼, 직업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했는데, 고작 ‘부각물’이라는 호칭 하나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봤다’며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고, 낙담하고 실망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헌신한 것이 무슨 밑천이라도 되는 것마냥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자신의 천국행을 보장받는 보증수표를 받아야만 앞으로도 계속 추구하겠다고 흥정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자신에게 지위를 향한 욕심과 분에 넘치는 욕망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어디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전부 흥정하고 무언가 얻어 내려는 마음과 패역, 기만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진실 앞에서 모두 진심으로 감복하였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보았으며, 또한 사람 내면엔 수많은 속셈과 불순물, 패괴 성품이 들어 있어 하나님의 인정을 조금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패괴된 인류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대하셔도 다 괜찮은 것입니다. 사람의 높은 지위는 하나님이 높여 주신 덕분이고, 낮은 지위 역시 하나님이 명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그저 작디작은 피조물일 뿐, 언제나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진리를 깨닫고 추구할 올바른 목표가 생겨났습니다. 모두들 설령 부각물이 되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겠노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각물의 시련이 맺은 결실입니다. 1993년 5월, 부각물의 시련은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