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서문>(발췌문 24)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 이후에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였다. 그의 사역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역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를 끝내고 행한 새 시대의 사역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사역이 끝난 후에도 하나님은 다음 시대의 사역을 계속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경영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낡은 시대가 지나가면 새로운 시대로 대체해야 하고, 옛 사역이 끝나면 새 사역으로 하나님의 경영을 이어 가야 한다.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사역을 이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이다. 물론, 이번 성육신 역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뒤를 잇는 세 번째 단계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때마다 늘 새로운 시작이 있고, 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역 방식, 하나님의 사역 장소, 하나님의 이름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생긴다. 이러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 시대 사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대적하든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항상 전 인류를 인도하여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열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였으며, 이번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내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님나라시대로 들어갈 수 있고, 또한 직접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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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발췌문 93)

 

말세에 심판과 형벌을 하는 사역, 즉 정결케 하는 마지막 사역에서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과 함께 최후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정결케 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거친 후에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마지막에 얻어지는 그들은 최후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형벌과 심판 사역은 본질이 인류를 정결케 하고 마지막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도,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정결케 할 수 있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낼 수 있다. 이를 통해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해 낼 수 있다. 사역이 끝나면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갈 것이며,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누릴 것이다. 다시 말해, 안식의 날을 맞아 하나님과 더불어 살 것이다. 반면,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거쳐 본모습이 철저히 드러난 후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속받은 바 있고 심판과 형벌도 받았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힘을 쓴 적도 있지만, 마지막 날이 이르면 자신의 악과 패역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한 채 도태되고 멸망하여 더 이상 이후의 세상과 인류 가운데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든 육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든, 악을 행했거나 구원받지 못한 자는 거룩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악을 행한 영혼과 악을 행한 사람들, 의인의 영혼과 의를 행한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결국 악한 자는 멸망하고 의인은 모두 살아남을 것이다. 사람이든 영혼이든 구원 대상에 해당하느냐는 마지막 시대의 사역만이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했는지에 근거해 결정된다. 지난 시대의 사람이 악을 행했고 또 구제 불능이었다면 틀림없이 징벌받을 대상이고, 이 시대에서 악을 행하고 또 구제 불능이라면, 그 역시 반드시 징벌받을 대상이다. 각 부류의 사람을 구분할 때는 시대가 아닌 선과 악에 근거한다. 사람을 선과 악으로 구분했다고 해서 곧바로 징벌하거나 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사역은 말세 정복 사역이 끝난 뒤 행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선과 악으로 사람을 구분해 왔다. 단지 사역이 끝난 후에 의인에게 상을 주고 악인에게 벌을 줄 뿐, 마지막 사역이 끝날 때 악인과 의인을 구분한 다음 바로 상선벌악의 사역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후의 상선벌악 사역은 오직 전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여 온전하고 거룩한 인류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단계 사역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서 전체 경영 사역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 악한 자를 멸하지 않고 남겨 둔다면, 전 인류는 계속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 또한 더 아름다운 경지로 전 인류를 인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끝난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사역이 끝날 때 전 인류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야만 하나님이 편히 안식하며 지낼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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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발췌문 14)

 

각 단계마다 성령이 역사하는 동시에 사람 또한 이를 증거해야 한다. 각 단계의 사역은 전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다. 싸움의 대상은 사탄이지만, 사역의 대상과 온전케 하는 대상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성과를 거둘지는 사람이 그를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증거가 바로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한 모든 요구이며, 사탄 앞에서 해야 하는 증거이다. 그 증거는 또한 하나님의 사역 성과를 실증한다. 전체 경영은 세 단계로 나뉜다. 하나님은 단계별로 사람에게 합당한 요구를 하는데, 시대가 달라지고 발전함에 따라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도 갈수록 높아진다. 그리하여 경영 사역도 점차 절정에 도달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이 사실을 알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요구는 더 높아졌고, 사람에게 요구하는 증거 역시 더 높아졌다. 사람이 하나님과 진정으로 협력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영광을 받는다. 사람의 협력은 바로 사람이 해야 하는 증거이고, 사람이 해야 할 증거는 바로 사람의 실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이 상응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진실한 증거가 있을지는 사람의 협력, 증거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사역이 끝날 때, 즉 전체 경영이 모두 끝날 때, 사람은 더 높은 수준으로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이 종결될 때, 사람의 실행과 진입 또한 절정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과거에는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준수하고 인내하며 겸손해질 것을 요구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 요구는 사람이 환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단계의 요구는 전체 경영에서 사람에게 단계적으로 제시되었다. 사역은 단계별로 더 깊어졌고, 사람에 대한 요구도 단계별로 더 높아졌다. 전체 경영은 이렇게 단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사람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사람의 성품이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에 점점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전 인류는 사탄의 권세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며, 나아가 사역이 완전히 끝날 때는 전 인류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게 된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고, 사람이 성품 변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협력하는 일 또한 없어지면서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다시는 거역하지도, 대적하지도 않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과 하나님의 협력은 더 조화로워질 것이다. 그 협력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삶이고, 하나님의 경영이 모두 끝난 후의 삶이며,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사탄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구원받은 이후의 삶이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삶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둠 속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따르지 않은 자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의 모든 사역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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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율법시대의 사역>(발췌문 19)

 

여호와가 2천 년의 사역을 행하기 전까지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계속 타락해 갔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사람은 모두 음란하고 부패하여(직역: 패괴되어) 마음에 여호와가 없었으며, 그의 말씀은 더더욱 담아 두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가 행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식견은커녕 이성조차 없던 그들은 그저 숨만 쉬는 기계 같아, 사람, 하나님, 만물, 생명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땅에서 독사처럼 유혹하는 일을 많이 했고, 여호와를 거스르는 말도 수없이 많이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지했기에 여호와는 어떤 형벌도,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노아가 601세가 되던 해에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도해 주었을 뿐이다. 즉, 여호와는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끌어 주었는데, 그 기간은 총 2천 5백 년에 달했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으로 사역한 기간이 2천 년이었고,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밖에서 동시에 사역한 기간이 5백 년이었다. 두 기간을 합쳐 2천 5백 년이 되는 것이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자신을 섬기려면 성전을 짓고, 제사장 의복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는 그들이 신발로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혀 성전 위에서 떨어지는 불에 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서 여호와의 배치에 순종했고, 성전에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여호와의 계시도 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여호와가 말씀한 후에 백성들을 이끌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에게 성전을 짓고 제단을 쌓아야 하며,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미리 준비해 둔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를 통해 그들을 단속하고,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했으며,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가늠했다. 이 밖에도 여호와는 그들을 위해 안식일을 정했다. 자신이 만물을 창조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 날을 첫날로 정했는데, 그날은 그들이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치고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를 찬미하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여호와는 제사장들을 모두 소집하여 제단 위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게 함으로써 여호와 제단 위의 제물을 누리도록 했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을 복이 있는 자, 자신과 더불어 분깃이 있는 자, 자신의 선민이라 했다(이것 또한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과 맺은 언약이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호와는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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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구속시대 사역의 실상>(발췌문 22)

 

예수의 사역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이루어졌다. 그는 그의 사역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해 겸손, 인내, 사랑, 경건함, 포용, 긍휼 그리고 자비의 성품을 가져왔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 그리고 온갖 누릴 것들을 베풀어 주었다.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 사람은 구주 예수를 의지한 덕분에 수없이 많은 물질적인 것들을 누렸고, 평안한 마음과 영적인 위로를 얻었다. 그들이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들이 살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에 의해 타락해(직역: 패괴돼) 있었다.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행하고 그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풍성한 은혜와 한없는 포용, 인내, 나아가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해 줄 수 있는 속죄 제물이 있어야 했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죄를 사해 주는 속죄 제물, 즉 예수만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았으며, 그들이 본 것 또한 예수의 긍휼과 자비뿐이었다. 이는 다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주는 수많은 은혜를 누려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은혜를 누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가 베풀어 준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써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 덕분에 사람은 죄 사함 받을 자격을 얻었고, 그가 베풀어 준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수가 ‘의인을 구속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성육신한 예수가 심판과 저주의 성품을 지니고 와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영원히 죄에 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6천년 경륜은 율법시대에서 정지되고, 그 상태로 6천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람의 죄는 갈수록 많아지고 깊어졌을 것이고 따라서 인류를 창조한 의의도 사라졌을 것이다. 사람은 율법하에서만 여호와를 섬기게 되지만 인류의 죄는 최초로 지음 받은 인류의 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충만한 긍휼과 자비를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더 생기고, 예수가 비싼 값을 들여 사 온 길 잃은 양이라 일컬어지게 된다. 반면 사탄은 그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예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했기에, 노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진노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고 그들의 죄를 포용해 주었고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그의 마음으로 감화시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의 포용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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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발췌문 88)

 

사람은 전통 관념에 근거해 하나님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고, 사람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기는 하나, 너무 단편적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주요 방식이 아니다. 병에 걸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그 병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베푼 은혜이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예수를 믿을 때 진리를 몰랐던 관계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매우 많이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게 했고, 사람을 오늘날까지 인도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내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부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회 건축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봉사자’ 단계의 사역을 하여 사람을 무저갱 속으로 빠뜨렸다. 봉사자 그 당시의 말씀은 모두 저주의 말이었다. 너의 육을 저주하고, 네가 가지고 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저주했으며, 너에게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주했다. 그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위엄이었다. 곧이어 하나님은 또 형벌 사역을 했고, 죽음의 시련을 주었다. 사람은 그러한 사역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 심판과 형벌을 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긍휼도 보았다.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과 나타내는 성품은 전부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그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사람의 분량에 따라 사람에게 공급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올 수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본래 모습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의 분량에 맞춰 조금씩 사람에게 공급해 주어 그에 대한 인식이 사람 내면에 점차 생겨나게 했다. 사람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심판이 더없이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봉사자 단계의 사역은 하나님이 창세 이래 행한 첫 번째 저주 사역으로, 사람을 저주하여 무저갱 속에 넣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통해 비로소 정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두 봉사자의 시련을 통해 드러났고, 자신의 충성심이 형편없고, 분량이 너무도 보잘것없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없으며, 언제든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겠다는 것은 말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봉사자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했지만,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하나님의 그 단계 사역이 몹시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으며, 사람의 생명 성품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봉사자 단계 전에 사람은 생명 추구는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지혜롭게 사역한다는 것을 몰랐으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 시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봉사자 단계의 사역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지극히 기묘하여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으며, 사람의 머리로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사람의 분량이 몹시 보잘것없고, 사람의 패역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한 것은 한 가지 성과를 얻기 위함이었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가 사람을 저주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저 말씀의 저주였을 뿐, 사실이 임한 적은 없었다. 하나님이 저주한 것은 사람의 패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 저주의 말씀 역시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도, 저주도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 내면의 깨끗하지 않은 것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에게 연단을 주었고, 사람 내면의 부족한 것들은 그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온전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이 행한 각 단계의 사역은 엄한 말씀이든 심판과 형벌이든 할 것 없이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며, 너무나도 적절한 것이다. 하나님은 만세와 만대에 이런 사역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에게 이런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한 것이다. 너희는 내적으로 고통을 조금 겪었지만, 늘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너희의 행복이다. 나중에 무엇을 얻게 되든 어쨌든 오늘날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사역이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을 겪지 않아 늘 겉으로만 행하고, 겉으로만 열성적일 뿐, 성품이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현재 사람의 내면에는 여전히 방자하고 오만한 것들이 많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성품이 많이 안정되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는 것 역시 너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 당시에는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 네 성품이 변화했을 때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지극히 지혜로웠다고 느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거짓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아직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인지, 저주하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은 밝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너는 하나님이 영광을 얻는 날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실로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너는 인생을 알고, 너의 육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며, 영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물론, 삶이 기쁨으로 충만해져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오늘날의 하나님 사역이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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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발췌문 37)

 

하나님은 전 우주 아래에서 사역을 행한다.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먹고 마셔야 한다. 하나님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를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해 왔다. 그러니 항상 마음을 이적과 기사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구약 율법시대에 일부 말씀을 했고, 은혜시대에는 또 예수가 많은 말씀을 했다. 그 뒤에는 사도와 선지자들이 예수가 정한 율법과 계명에 따라 사람들에게 실행하게 했으며, 그가 말한 원칙들에 따라 체험하게 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억압하여 믿게 하거나 복종하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이적과 기사만 행한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양육하고 목양한 뒤 사람이 순순히 순종케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것이 사역하고 말씀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다양한 사역 방식으로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책망하고 훈계하든, 공급하든,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의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 기묘함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한다. 말세에 하나님이 시대를 끝내려 할 때 사람이 온전케 되면 그때 사람은 이적과 기사를 볼 자격을 갖게 된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순종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너는 이적과 기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의 너는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 어떠한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너는 타락한 사람이므로 아직 순순히 순종하지 못한다. 그런 네가 이적과 기사를 볼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를 행할 때는 사람을 벌할 때이고, 세상을 바꿀 때이며, 시대를 끝낼 때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때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목적도 아니다. 사람들이 다 이적과 기사를 보고, 하나님의 영체까지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않겠느냐? 동방에서 얻는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은 대환난 속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 얻어진 이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온갖 연단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막연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이들은 어떤 이적이나 기사도, 어떤 이적도 본 적이 없으며, 대단한 도리나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실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더 분명히 나타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실제적인 사역이다. 예수의 시대에 그는 사람을 온전케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인류를 속량하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했다. 그가 온 목적은 주로 십자가 사역을 이루는 것이었으므로 이적을 행하는 것은 그의 직분 범주 내에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적과 기사들은 모두 사역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한 일이고 부가적인 것이었으므로 결코 시대 전체의 사역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구약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실제적인 사역이므로 그는 절대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다. 일단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 실제적인 사역을 교란하게 되므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고 하고는 도리어 또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면, 사람이 진실로 믿는지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 안에는 종교적인 것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목적은 사람 내면의 모든 종교 관념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없애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제를 알게 하며,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지금 네가 실제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보배로운 것이다! 진리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 지금 너는 진리를 얼마나 갖추었느냐? 이적과 기사를 행하기만 하면 그가 하나님이란 말이냐? 악령도 이적과 기사를 보일 수 있다. 그럼 그것들 역시 하나님이란 말이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고 생명을 추구해야지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어야 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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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성육신의 비밀 4>(발췌문 33)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수많은 비밀을 알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사역을 알게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얻고, 지금까지 사람이 풀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되며, 역대 선지자와 사도가 한 사역과 사역의 원칙을 알게 된다. 또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과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사역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한 사역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품도 알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을 알게 된 것도 역시 말씀을 통해서이다. 과거에 네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깨닫고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예수의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지만 이번 단계 사역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한 말씀은 역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을 능가한다. 선지자가 한 예언일지라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선지자가 한 말은 예언에 불과하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 당시 하나님이 하려고 했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것도 아니며, 또 사람에게 진리를 베푸는 것도 비밀을 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베풀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 단계에서 한 말씀에는 예언도 있고 진리도 있지만, 그 말씀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첫 단계 사역은 여호와의 사역이었다.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해 주는 것이었고, 땅에 사역의 발원지를 마련하기 위한 시작 사역이었다. 당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몰랐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므로 첫 단계 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어야 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이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예언을 하게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예언을 했지만, 이는 그저 하나님 사역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첫 단계 사역에서는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으므로 선지자를 통해 각 나라와 족속을 효유했다.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말세에 하는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역대에 행한 적이 없다. 비록 이사야, 다니엘, 요한이 많은 예언을 했지만, 그들이 한 예언은 지금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말은 예언에 그쳤지만 지금 하는 말은 예언이 아니다. 내가 모든 말을 예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한 말이 모두 내가 떠난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말씀 사역은 예수 시대에 한 적이 없고, 율법시대에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난날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한편,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말씀이지만 말씀에도 차이가 있다. 여호와가 한 말씀의 본질은 무엇이더냐? 그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 그 말씀이 생명과 영적인 일에 관련되지는 않았다. 어째서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각 지역에 효유했다고 하겠느냐? ‘효유’라는 두 글자는 분명히 알리고 직접 지시한다는 뜻이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쳤을 뿐, 비유 같은 것도 없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사람을 책망하거나 징계한 것이 아니었고 심판하거나 형벌한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는 그저 인도하기만 했다. 여호와는 모세를 시켜 그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라고 일러 주면서 날마다 해 뜨기 전에 주워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까지 두면 썩어 버리니 그날 먹을 양만 넉넉히 거두라고 했다. 여호와는 사람을 꾸짖거나 사람의 본성을 들추어내지 않았고, 사람 내면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아 단순히 기계적인 행동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을 반포해 백성들을 이끌어 주기만 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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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발췌문 89)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사람이 사탄을 저버리고 조상을 저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심판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고 사람에게 인생의 본질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계속되는 심판이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모든 심판은 사람의 운명에 직접 관련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여 사람이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인생과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을 알게 되며, 사탄이 패괴시킨 인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렇게 형벌하고 심판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찌를 수 있고, 사람의 영을 불러 깨울 수도 있다. 이런 심판의 목적은 아주 깊이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속은 사람의 마음과 영을 깨우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영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영이 이미 오래전에 죽어 하늘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있는 줄도 모르며, 더욱이 자신이 죽음의 나락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자신의 썩은 시체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죽음의 음부에 떨어진 존재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지상 만물이 이미 인류에 의해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오늘날, 창조주가 땅에 와서 구원 가능한 패괴된 사람들을 찾고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온갖 연단과 심판을 겪었지만 사람은 시종일관 무감각하여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람은 너무도 타락하였다! 이러한 심판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자비한 우박과도 같겠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이로운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고 고해의 심연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을 음부에서 건져 내기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사람의 영이 사탄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극도로 타락한 너희들을 구원하려면 온 힘을 다해 불러 깨우고 심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차디찬 너희의 마음을 깨울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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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말씀 묵상<사역과 진입 4>(발췌문 191)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이나 대만 동포가 말하는 내륙에 성육신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에 왔을 때, 하늘 위아래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으로 와서 오랫동안 사역하고 생활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아는 이가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으로 왔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영이 얼마나 대단한 기세로 역사하든 하나님은 시종일관 내색하지 않으며,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 단계의 사역은 천계(天界)에서의 사역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눈으로 보았지만, 알지는 못한다. 하나님이 이 단계의 사역을 끝내면 모든 사람은 긴 꿈에서 깨어나 태도가 일변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번에 육신으로 온 것은 호랑이 굴에 떨어진 것과 같다.”라고 말씀한 바 있다. 즉, 하나님은 이번 사역을 육신으로 행하고, 그것도 큰 붉은 용이 군거하는 곳에 강생하여 행하기 때문에 더욱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땅에 온 것이다. 하나님이 직면한 것은 총칼과 몽둥이요, 시험이요, 살기등등한 사람들이므로, 언제든 죽임 당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은 진노를 지니고 왔다. 그러나 그가 온 이유는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구속 사역에 이어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 단계의 사역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천방백계로 시험의 공격을 피하며 자신을 낮추고 감추었지, 한 번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한 적이 없다. 예수가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 뿐, 온전케 하는 사역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이 반만 완성되었다. 구속 사역을 끝낸 것은 전체 계획의 절반에 불과했다. 새 시대가 시작되고 옛 시대가 지나가려 할 때, 아버지 하나님은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깊이 생각하고,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과거에는 말세에 성육신할 것이라고 명확히 예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번에 더 은밀하게 육신으로 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만인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동틀 무렵에 땅에 와 육신에서의 생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순간이 도래했음을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이가 깨어 기다릴 수도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하늘의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이미 땅에 왔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더 순조롭게 사역을 펼치고, 보다 나은 사역의 성과를 거두며, 더 이상의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잠에서 깨어나는 동틀 녘에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끝났을 것이며, 하나님은 땅을 떠남으로써 땅에서 떠돌며 기거했던 생애를 마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하고 친히 말해야지, 사람이 끼어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고 땅에 와 친히 사역을 행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은혜시대의 수천 배에 달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큰 붉은 용이 군거하는 곳에 내려와 자신의 사역을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빈궁한 백성, 거름 더미 속의 사람을 구원(원문: 救贖)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고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극악무도한데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이 때문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늘 묵묵히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잔혹하게 굴어도 하나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하늘의 아버지가 맡긴 더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할 뿐이다. 너희 중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깨달은 자가 있더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의 부담을 아들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영은 항상 걱정하고, 땅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늘 간구하며 애태우는데, 어느 누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늘과 땅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항상 멀리서 마주하며, 영 안에서 함께한다. 인류야! 언제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냐? 언제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것이냐? 아버지와 아들은 본래 서로를 의지하거늘, 이들을 하늘 위아래로 갈라놓아야만 하겠느냐?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듯 아버지도 아들을 그리워하거늘, 왜 하염없이 기다리고 고대해야만 한단 말이냐?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지는 않으나 수많은 낮과 밤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아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 그는 지켜보며,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랑하는 아들의 빠른 귀환을 위한 것이건만, 세상 끝과 바다 끝을 떠돌고 있으니 언제쯤 재회할 수 있겠느냐? 상봉하는 날 영원히 함께할지라도 어찌 수천 번의 밤낮을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떨어져 지내겠느냐? 땅에서의 수십 년은 하늘에서의 수천 년과 같거늘 어찌 아버지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땅에 온 하나님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파에 시달린다. 하나님은 본래 죄가 없거늘 어찌 사람과 같은 고난을 겪게 하는 것이냐?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을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넘치도록 주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적어도 너무나 적으니 어찌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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