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p 01 Tue 2020 10:00
매일 말씀 묵상<정복 사역의 실상 3>(발췌문 291)
- Sep 01 Tue 2020 08:00
매일 말씀 묵상<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발췌문 303)
매일 말씀 묵상<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발췌문 303)
사람이 하나님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정이 있어서도, 사람이 얻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아서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이성이 건전하고 양심이 예민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가 있더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불사름 당한 이가 있더냐?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한 사람 중에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집 밖으로 쫓겨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징벌 속에서 살게 된 이가 있더냐?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린 사람 중에 빈털터리가 된 이가 있더냐?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기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위해 자기 일생의 정력을 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고, 하나님께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점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너희 같은 이런 인성으로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너희는 자신이 인류 중의 불량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인성이 가장 비천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존칭’이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를 늑대의 아비나 어미, 늑대의 자식이나 손자, 늑대의 후예, 늑대의 민족이라고 한다. 너희는 자기 신분을 알고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며, 스스로를 상등 인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악랄한 한 무리의 비인류이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면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의 이성이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너희의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늑대’라는 호칭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저주와 징벌의 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너희는 출생이 비천하고, 본래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본래 한 무리 굶주린 늑대이고, 한 무더기 잡동사니나 쓰레기다. 내가 너희에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처럼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계속 이렇게 거역한다면 나는 나의 사역을 그만둘 것이며, 앞으로 다시는 너희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옮겨 가서 사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게 된다. 나는 나와 적이 되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마음에 합하길 원하느냐, 아니면 나와 적이 되길 원하느냐?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Sep 01 Tue 2020 06:00
매일 말씀 묵상<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발췌문 300)
- Aug 31 Mon 2020 11:00
매일 말씀 묵상<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발췌문 355)
매일 말씀 묵상<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발췌문 355)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계획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필요와 탐구욕, 그리고 심적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나 보살핌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몰락과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Aug 31 Mon 2020 06:00
매일 말씀 묵상<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7)
매일 말씀 묵상<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발췌문 107)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비록 그가 육신에 거하고 있으나 그의 인성이 육에 속한 사람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한 성격이 있으며, 그 성격 역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에는 연약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연약함이란 그의 인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연약함은 신성을 어느 정도 제약하지만 무한정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와 기한이 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의 정상 생활 이외에도 인성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신성에 좌우된다. 그리스도가 인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하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직접적으로 신성에 지배되며, 그에게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이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고 사역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나타내고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종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육신을 입은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경배드릴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그는 그저 하나의 피조물로 이 땅에 왔기에 피조물의 외형, 전에 없었던 인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 이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이요,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 자신임에도 그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은 육신의 위치에서 행하는 일이므로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드린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그의 어떠함이다.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자신은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어떠함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하나님을 거역할 리 없고, 그가 사람에게 어떻게 요구하든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리 없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보다도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을 갖고 있다. 그 권병은 신성이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어떠함이다. 그 성품과 어떠함으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아무리 정상일지라도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든,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간주한다. 그리스도가 아무리 신성의 어떠함을 나타내도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순종하고 자신을 낮출수록 어리석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면서 위대한 형상을 한 ‘위인’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숭배하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까닭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인성에 가려져 있지 않고,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지니고 있다면, 아마 누구도 그를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늘 하늘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는 인성도, 피조물의 속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그리스도는 멸시하는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Aug 30 Sun 2020 16:00
매일 말씀 묵상<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128)
매일 말씀 묵상<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발췌문 128)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을 하고, 친히 사람 앞에 나타나고 사람에게 보게 하는데, 이것이 작은 일이겠느냐?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에게 보게 하고 막연하거나 공허한 존재가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하나님은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자신을 낮출 수도 있음을 알게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단순할 리 있겠느냐? 사탄이 패괴시킨 것은 사람의 육이고,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 또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육신을 입고 와서 사탄과 싸우고 친히 사람을 목양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역에 이롭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했는데, 그 두 차례 입은 육신은 모두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자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탄과 싸우는 대상은 하나님의 영이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든, 어쨌든 하나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천사는 사탄과 싸울 수 없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더더욱 사탄과 싸울 수 없다. 천사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으며, 사람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인간 세상에 임하여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해야 한다. 즉, 육신을 입고, 그의 원래 신분을 지니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사역하거나 사람이 사역한다면 이 싸움은 영원히 성과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끝을 맺지도 못한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탄과 싸워야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며, 사탄도 수치를 당하고 더 이상 틈탈 기회나 수작 부릴 방법이 없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영이 할 수 없는 것이고, 육에 속한 사람은 더더욱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싸움에 ‘참여’한다면 그저 참패하여 낭패를 당할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패역한 인류를 정복할 수도 없다. 그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낡은 사역을 하거나 사탄을 물리치는 것과 관련 없는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헛수고를 하겠느냐? 사람을 얻지 못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다면 그 사역에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분은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천지개벽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사탄과 싸우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하에서 창조주를 만족게 함으로써 사탄을 물리칠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때마다, 즉 새 시대의 사역이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 사역을 행하며, 이를 통해 시대 전체를 이끌고 온 인류를 위해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시대가 새롭게 바뀔 때마다 사탄과의 싸움이 새로 시작되며, 이로써 인류도 더 새롭고 아름다운 경지, 하나님이 친히 이끄는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지만,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모든 싸움이 끝난 후의 열매이기도 하다. 사탄은 만물을 부패시킨 존재이고, 모든 싸움의 패장이자 싸움이 끝난 후에 벌을 받는 대상이다. 하나님, 사람, 사탄, 이 셋 중에서 오직 사탄만이 버림받을 대상이지만, 사탄에게 얻어져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징벌받는 대상이 된다. 앞서 말한 셋 중에서 만물의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한편,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다가 하나님께 되찾아진 뒤 하나님의 도를 행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 악한 자를 심판하는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고 사탄은 반드시 패배하겠지만, 사람은 이기는 자도 있고 실패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이긴 자에 속하고, 패배하는 사람은 패배자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것으로, 모든 사역의 종결이자 근본 취지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경륜의 주된 핵심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주된 이유도 이 핵심과 이 사역을 위함이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첫 번째 성육신도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하나님은 친히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첫 번째 싸움의 사역, 즉 인류를 속량하는 사역을 완성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단계도 하나님이 친히 사역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친히 말씀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다른 사역도 곁들여 하겠지만, 그가 친히 이 사역을 하는 주목적은 역시 사탄을 물리치고, 모든 인류를 정복하여 얻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의 이 사역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만약 그가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춘다는 것을, 하나님이 바로 실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만 사역을 한다면 성육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지 않아도 그의 낮춤과 감춤, 위대함과 거룩함을 사람에게 직접 계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사람을 구원하거나 온전케 하지 못하며, 더욱이 사탄을 물리치지도 못한다. 단순히 영과 영의 싸움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사역은 실질적인 가치가 전혀 없으며, 사람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운명과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깊은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그저 사람에게 보여 주거나 사람의 시야를 넓혀 감동과 격려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어떤 의의도 없다. 네가 이런 인식밖에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아직도 하나님이 성육신한 진정한 의의를 깨닫지 못했다는 뜻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Aug 30 Sun 2020 06:00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발췌문 139)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발췌문 139)
성육신 하나님이 항상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육신을 벗어나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사역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인처럼 죽을 때의 모습이 되어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역이 끝나면 사람을 떠난다. 그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그는 사람의 나이 계산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단계에 따라 육신의 생명을 끝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언젠가 육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야 떠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지, 정상인의 삶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등 정상인의 갖가지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은 것이고, 육신에 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 경륜의 한 부분을 완성한 후에 사람을 떠날 뿐이다. 그가 육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영은 육신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에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며, 그의 직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의 수명과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이 단계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얼마나 유지될지, 땅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부 영의 사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는 육신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다. 육신의 수명만 보자면 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떠나서도 안 됐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이 끝나자 육신도 거두어들이니, 육신은 영을 따라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에 있을 때 이러한 사역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땅에 온 이유는 정상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정상인의 삶을 산 후에 사역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신성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뜻도, 혈기도 섞여 있지 않으며, 사회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사람의 사유나 관념은 물론 처세 철학과도 관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성육신의 실제 의의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주된 이유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지, 다른 번잡한 과정은 없다. 그는 정상인의 체험을 갖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해야 하는 사역에는 정상인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은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나머지는 그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번잡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성육신한 의의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 이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이 끝나고 육신의 직분은 전부 이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육신에 거하며 사역할 수는 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해야 하므로 그때는 육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의 사역이 전면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더 잘 전개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래의 계획에 따라 사역한다.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사역을 끝냈는지, 그는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가 예정한 길로 인도하므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후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영이 사람의 삶을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실제에 더 잘 진입하여 실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룰 사역이자,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니, 너희는 여기에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봐야 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Aug 29 Sat 2020 16:00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발췌문 138)
- Aug 29 Sat 2020 13:00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발췌문 159)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발췌문 159)
너희는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을 알고 기본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적극적인 측면의 진입이다. 네가 이런 이상과 관련된 진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역이 어떻게 바뀌든 전반적으로 너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상이 분명해지며, 네가 진입하고자 하는 것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도 목표가 생긴다면, 너의 체험과 인식은 더 깊어지고 더 구체적이 되며, 큰 방향을 알게 되어 네가 생명에 해를 입거나 헤매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알지 못한다면, 각 단계의 사역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사나흘이나 네댓새가 지나도 돌이키지 못하고,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도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일에 지장을 주지 않겠느냐? 너희는 적극적인 측면의 진입과 실행을 다방면적으로 잘 알아야 한다. 또한 사역 이상에도 너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정복 사역의 의의, 앞으로 온전케 되는 길, 환난과 시련을 통해 이루려는 것, 그리고 심판과 형벌의 의의, 성령 역사의 원칙, 온전케 되는 것과 정복되는 것의 원칙이다. 이것은 모두 이상과 관련된 진리에 속한다. 이 밖에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세 단계 사역이 있다. 또 이후의 증거에 관한 것도 있는데, 이것 역시 이상에 관련된 진리로, 무엇보다 기본적인 것이고 중요하다. 지금 너희에게는 진입하고 실행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그것들은 각각 절차와 세부적인 내용이 있다. 이런 진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그것은 네가 아직 진입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진리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얄팍해서 기본적인 진리들도 실행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들도 처리하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성품이 패역한 데다 오늘날의 사역에 대한 인식 또한 너무 얄팍하고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온전케 되기가 쉽지 않다. 네가 너무나 패역하고, 자기주장이 강해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하며, 심지어 가장 분명한 진리마저 실행하지 못한다면, 너 같은 사람은 구제 불능으로, 정복되지 못한 자에 속한다. 너의 진입에 세부적 내용과 목표가 없다면 너의 성장은 느릴 것이고, 너의 진입에 조금도 실제가 없다면 너의 추구는 헛될 것이다. 또한, 진리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 성장과 성품 변화는 모두 실제에 진입함으로써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세부적으로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진입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많이 체험하고, 현실적으로 많이 깨닫고 진입한다면, 너의 성품은 빨리 변화할 것이다. 지금 너는 실행에 대해서는 그다지 분명하게 알지 못할지라도, 사역 이상만큼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상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너는 진입할 수가 없다. 반드시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그 후에 진입할 수 있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야 진리를 더 깊이 깨닫게 되고 더 깊이 진입하게 된다. 너희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 Aug 29 Sat 2020 06:00
매일 말씀 묵상<성육신의 비밀 3>(발췌문 115)